미국과 이란 간의 무력 충돌이 종전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국제사회의 관심이 중동 재건 사업으로 쏠리고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평화와 복구 논의에 앞서 한국이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최근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 과정에서 약 3,000억 달러(한화 약 450조 원) 규모의 이란 재건 및 투자기금 조성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 기금을 자국 세금이 아닌 민간 자본과 국제 투자금으로 조성한다는 입장이다.
일부 외신은 한국·일본·유럽 기업들의 참여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또한 이를 두고 ‘제2의 중동 붐’이라며 기대감도 드러낸다. 과거 한국 기업들이 중동 건설시장에서 거둔 성공 신화를 떠올리며 새로운 수주 기회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 정치는 희망이 아니라 위험을 생각해야 하는 영역이다.
이란은 오랜 경제 제재와 전쟁으로 국가 재정이 크게 위축된 상태다. 더욱이 현재 논의되는 기금은 현금 지급 방식이 아니라 민간 투자 중심의 구조이다. 결국 기업이 먼저 자금을 조달해 사업을 수행하고, 향후 투자 수익이나 사업 대금으로 회수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위험의 정도이다. 만약 미국의 정권 교체로 정책 기조가 바뀌거나, 이란이 향후 합의를 이행하지 못해 제재가 재개된다면 투자금 회수는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번 기금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 중단과 국제협약 이행 여부에 따라 단계적으로 집행되는 조건부 성격을 띠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해당 기금을 둘러싼 해석 차이다. 이란 내부에서는 이를 전쟁 피해에 대한 사실상의 보상이나 재건 지원 성격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있는 반면, 미국 측은 민간 투자 목적의 기금일 뿐 보상과는 무관하다는 견해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같은 기금을 놓고 양측의 인식이 엇갈리는 상황은 향후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한국은 분명한 원칙이 세워져야 한다. 첫째, 국민 세금이 단 한 푼도 위험한 해외 사업의 보증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이 동맹국 기업의 참여를 독려하는 과정에서 한국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 국책 금융기관의 보증 지원을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공적 자금은 국민의 재산이다. 불확실성이 큰 사업의 손실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일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둘째, 확실한 지급보증 없는 투자는 금물이다. 국제금융기구나 주요 금융기관의 법적 보증, 투자금 보호장치, 제재 재개 시 손실보전 체계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참여를 서둘러서는 안 된다.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판단하는 주권 국가이기 때문이다. 위험 관리가 없는 사업은 투자도 수주도 아닌 투기일 뿐이다.
셋째, 한국은 일본과 유럽연합(EU) 등과 공동 대응해야 한다. 이 문제는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기업만 위험을 떠안는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주요 동맹국들과 함께 투자 조건과 위험 분담 원칙을 마련하는 것이 국익을 지키는 길이다.
동맹은 존중과 신뢰 위에서 유지된다. 동맹이란 한 나라의 전쟁 비용과 위험을 다른 나라가 대신 부담하는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안보를 함께 지킨다고 해서 경제적 위험까지 무조건 떠안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익 앞에서는 냉정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450조 원 잭팟’이라는 장밋빛 환상이 아니다. 그 거대한 숫자 뒤에 숨어 있는 정치, 외교, 금융 등 위험을 정확히 파악하는 냉철한 판단력이다.
정부와 기업은 화려한 재건 사업의 포장지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국익은 무모한 낙관이 아니라 철저한 위험 관리와 원칙 있는 외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450조 원의 기회가 될지, 수십 년간 후회할 함정이 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저작권자 ⓒ 시사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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