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계열 할머니가 향년 100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제 할머니는 12년 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그리운 남편 조병만 할아버지 곁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의 인연은 할머니가 열네 살 되던 해 시작되었다. 집안 형편으로 데릴사위로 들어온 조병만 할아버지를 만난 뒤, 6년 후 부부의 연이 시작됐다. 그리고 그 인연은 무려 76년 동안 이어졌다. 부부이자 친구였고, 연인이자 서로의 전부였던 두 사람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었다.
2014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두 노부부의 일상을 담아내며 대한민국을 눈물로 적셨다. 영화 속 두 사람은 백발의 노인이었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소년과 소녀였다.
봄이면 서로의 머리에 꽃을 꽂아주고, 여름이면 개울가에서 물장구를 치며 웃음을 나누었다. 가을에는 낙엽을 던지며 장난을 쳤고, 겨울에는 눈싸움하며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그들의 사랑은 거창한 약속이나 화려한 언어로 포장되지 않았다. 찬 음식을 싫어하는 남편을 위해 평생 따뜻한 밥을 지어낸 아내의 정성, 결혼 70년이 넘도록 “고맙다”라는 말을 잊지 않았던 남편의 배려, 그리고 “아무리 늙어도 여자에게 나무를 지게 할 수는 없다”며 평생 아내를 존중했던 마음이 사랑의 전부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삶이 늘 행복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슬하에 둔 12명의 자녀 가운데 무려 6명을 먼저 떠나보내야 했다. 전쟁과 가난, 시대의 아픔 속에서 부모가 자식을 묻는 참척의 고통을 견뎌야 했다.
시장에서 내복을 고르며 “누가 먼저 가든 이 옷을 가져가 먼저 간 아이들에게 입히자”고 나누었던 부부의 대화는 많은 이들의 가슴을 무너뜨렸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슬픔조차 두 사람은 함께 견뎌냈고,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러기에 남편의 죽음은 할머니에게 또 다른 긴 이별의 시작이었다. 조병만 할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난 뒤, 강계열 할머니에게 남겨진 12년은 그리움의 시간이었다. 무덤가에서 남편의 옷을 한 벌씩 태우며 “내가 없어도 잘 지내야 한다. 네가 그리울 때면 나도 참을게”라고 말하던 모습은 많은 사람의 눈시울을 붉혔다.
할머니는 종종 혼자 영화관을 찾았다. 사람들에게는 단지 86분짜리 다큐멘터리였지만, 할머니에게 그 영화는 남편을 다시 만나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스크린 속에서 웃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며 할머니는 조용히 그리움을 달랬다. 영화관은 할머니에게 추억의 공간이자 사랑의 성소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 긴 기다림도 끝이 났다. 백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강계열 할머니는 이제 사랑하는 남편이 먼저 건너간 그 강을 건넜다. 12년의 그리움을 뒤로한 채 다시 손을 맞잡고, 다시 함께 걷고 있을 것이다.
오늘날 사랑은 종종 조건과 계산, 순간의 감정으로 소비된다. 그러나 강계열 할머니와 조병만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남긴 사랑은 달랐다. 평생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살았고, 그 사람이 춥지 않기를 바랐으며, 외롭지 않기를 기도했다. 자신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와 존중, 그리고 어떤 고난 속에서도 놓지 않았던 손,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었다.
이제 할머니는 더 이상 어두운 영화관에서 홀로 눈물을 훔치지 않아도 된다. 이승에서의 긴 기다림을 마친 두 분은 저 하늘 어디선가 다시 커플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손을 꼭 맞잡은 채 영원한 봄날을 거닐고 있을 것이다.
평생을 뜨겁게 사랑했고, 아름답게 기다렸던 강계열 할머니, 조금은 늦었지만 두 분의 사랑이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오래도록 남기를 기도한다.. <저작권자 ⓒ 시사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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