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가 남긴 상처가 너무 깊다. 대한민국 선거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지 엿새가 지났지만 국민의 분노와 불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거리로 나선 시민들은 재선거를 외치며 선거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전국 대학가에서도 시국 성명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의 시국 선언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참정권이 침해되었다는 위기의식의 표현이다. 선거는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가장 기본적인 제도이다. 국민은 투표를 통해 주권을 행사하고, 국가는 그 표가 온전히 반영되도록 보장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그런데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발길을 돌리거나 장시간 대기해야 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개표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투표가 계속되는 혼란이 빚어졌다.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해야 할 선거 관리 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우리 민주주의의 취약한 단면을 드러낸 중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번 사태가 국민의 선거 결과에 대한 신뢰마저 흔들고 있는 점이다. 선거는 결과보다 과정에 대한 신뢰가 우선이다. 결과에 승복하는 문화 역시 절차적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믿음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선거관리시스템 전반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키며 국민적 불신을 키우고 있다.
지금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특정 정파의 목소리가 아니다. “내 한 표가 제대로 행사되고 정확히 집계되었는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검·경 합동수사본부 설치를 지시한 것은 당연하면서도 필요한 조치이다. 선거관리위원회 개혁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국가 주요 인사들과 머리를 맞댄 것 역시 의미 있는 출발이다.
그러나 보여주기식 대응이나 일회성 수사가 되어서는 안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 책임은 누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어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답이 필요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독립성은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이지, 무능과 실패에 대한 면책특권이 아니다. 독립성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기관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선관위는 이번 사태를 뼈아픈 자기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책임 규명과 근본적인 개혁이다. 투표용지 관리 체계와 선거 운영 시스템 전반을 원점에서 재점검하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투명성과 검증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어떠한 상황에서도 국민의 참정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선거 행정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신뢰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선거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국가 공동체의 기반도 함께 흔들린다. 정부와 선관위, 정치권은 국민의 준엄한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그것이 주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며, 흔들리는 민주주의의 기초를 다시 세우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시사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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