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치러진 6.3 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유권자의 소중한 참정권을 박탈하고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했다. 사태의 심각성이 얼마나 엄중했으면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매우 유감스럽다”며 비판 메시지를 냈겠는가.
현행 공직선거법은 부정한 방법으로 선거의 자유를 방해한 자를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직무를 유기해 선거권을 방해한 경우 역시 엄연한 형사처벌 대상이다. 수요 예측 실패라는 말로 이번 사안을 묵과할 수 없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선거관리위원회를 둘러싼 각종 논란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감사원 감사를 통해 드러난 선관위의 민낯은 충격 그 자체였다. 지난 10년간 진행된 291차례의 경력직 공무원 채용 전반에서 비리와 규정 위반이 사정없이 쏟아져 나왔다. 고위직 자녀의 아빠 찬스 채용 등 국가기관이 아니라 그들만의 가족회사처럼 운영되어 온 것이다.
조직 운영에 대한 우려도 끊이지 않고 있다. 선거철마다 적지 않은 인력이 휴직하면서 선거 관리 역량에 공백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휴직은 법이 보장한 권리지만, 선거 관리 기관이라면 핵심 업무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 반복되는 운영 부실은 책임 의식과 공직 윤리의 부재를 의심하게 한다.
이러한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선관위는 반성은커녕 독립적 헌법기관이라는 방패 뒤로 숨어왔다. 외부 감사를 거부하다 못해, 감사원의 채용 비리 감사에 반발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까지 청구했다. 헌재가 법리적 이유로 선관위의 손을 들어주자, 그들은 마치 면죄부라도 받은 양 개혁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끼리끼리 봐주며 국민의 혈세를 나눠 먹는 ‘부패의 사각지대’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선관위는 3,000명 규모의 조직을 운영하며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방정부와 기존 행정조직이 선거 업무를 상당 부분 담당한다. 선거 때만 바쁜 조직에 막대한 인력과 세금을 투입하는 현재의 구조가 효율적인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선거는 제대로 관리 못 하면서 특권만 누리는 선관위를 그대로 두고만 볼인가. 사법당국은 이번 사태의 책임자를 일벌백계하고, 정부와 국회는 선관위의 비대해진 조직을 해체 수준으로 전면 개혁해야 한다.
어떠한 기관도 성역이 될 수는 없다. 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가면을 쓰고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조직이라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저작권자 ⓒ 시사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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