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불교계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내건 봉축 표어는 ‘마음은 평안으로, 세상은 화합으로’이다. 짧은 한 문장이지만, 그 안에는 오늘의 대한민국 사회가 반드시 되새겨야 할 시대적 과제가 깊이 담겨 있다. 종교적 수사가 아니라 갈등과 분열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성찰과 치유의 메시지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극심한 대립 속에 흔들리고 있다. 정치는 타협과 조정의 기능을 잃어버린 채 진영 논리에 갇혀 있고, 경제는 심화되는 양극화 속에서 계층 간의 거리만 넓어지고 있다. 사회 곳곳에는 불신과 혐오가 스며들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대화의 상대가 아닌 제거해야 할 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마저 퍼지고 있다. 소통의 문은 닫히고, 그 자리를 비난과 증오가 대신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내면의 평안을 통해 세상의 화합을 이루자’라는 봉축 표어는 단순한 권유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반드시 회복해야 할 가장 본질적인 가치이며, 공동체를 살려낼 마지막 희망의 언어다.
불교의 핵심 사상 가운데 하나인 연기법(緣起法)은 세상의 모든 존재가 홀로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생기므로 이것이 생긴다’라는 가르침처럼, 인간과 사회 역시 서로 연결된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정치의 극단적 대립은 국민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적 박탈감과 분노를 키운다. 지역과 세대 간의 갈등 또한 개인의 마음속에 불안과 적개심을 쌓이게 한다. 결국 사회의 모든 문제는 따로 떨어진 개별 현상이 아니라, 서로 맞물린 하나의 구조인 셈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나치게 나와 내 편만을 앞세우며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이익만을 절대화하는 독선과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오만함이 결합될 때 공동체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승자독식의 논리가 아니라 상생의 철학이다.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타인이 존재해야 한다는 자각과 함께 살아야 모두가 산다는 공동체 의식의 회복이 절실하다.
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길 역시 결국 소통이다. 그러나 진정한 소통은 자기주장만 반복하는 일방적 외침이 아니다. 상대의 아픔을 이해하려는 공감과 경청이 함께 할 때 비로소 소통은 힘을 가지게 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慈悲)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는 마음이다. 정치가 국민의 삶을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당리당략을 내려놓고 대화해야 하며, 기업과 노동자 또한 서로의 생존을 존중하는 자세로 마주해야 한다. 사회 곳곳에서 상대를 이겨야 할 대상으로 보는 시선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화합의 가능성도 살아난다.
이러한 소통의 토대 위에서만 진정한 정의(正義)도 바로 설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정의를 상대를 응징하고 처벌하는 칼날처럼 사용한다. 그러나 본래 정의란 누군가를 쓰러뜨리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균형과 공정을 세우고, 모두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사회의 질서를 만드는 데 그 본질이 있다. 소통 없는 정의는 독선으로 흐르기 쉽고, 공감 없는 심판은 또 다른 폭력이 되기 쉽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과정에서만 정의는 복수와 배제가 아닌 치유와 통합의 가치로 완성될 수 있다.
결국 세상의 화합은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은 성찰에서 출발한다. 내 안의 분노와 편견, 탐욕을 다스리지 못한 채 외치는 화합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 사람의 마음이 평안을 되찾으면,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여유와 따뜻함이 스며든다. 그러한 작은 변화들이 모일 때 사회는 비로소 희망을 회복하게 된다.
우리는 이제 갈등의 에너지를 소모적인 파괴가 아니라 생산적인 발전의 힘으로 바꾸어야 한다. 서로 다른 거문고의 줄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듯,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들도 소통이라는 조율 과정을 거칠 때 비로소 화합이라는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완성할 수 있다.
올해 부처님오신날의 봉축 표어가 던진 울림을 결코 가볍게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분노가 아니라 더 깊은 이해이며, 더 강한 적대가 아니라 더 넓은 포용이다. 반목과 질시의 어둠을 걷어내고 소통과 긍정의 등불을 밝힐 때다. 나부터 먼저 손을 내밀고, 나부터 먼저 귀를 여는 작은 실천들이 이어질 때, 우리 공동체는 대립의 늪을 넘어 정의와 신의 그리고 화합이 살아 숨 쉬는 따뜻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시사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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